호국불교

이미지 없음

호국불교란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불교 신앙의 한 형태로서 그 사상적 기반은 인왕경, 금강경, 대운경 등의 호국 불교경전에 두고 있다. 따라서 중국 불교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것이 있었지만, 중국의 경우 왕권을 강화하거나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수단으로서만 이용하였기 때문에 폭넓게 자리잡지는 못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호국불교가 초기에는 왕권을 강화하는 것과 어느정도의 관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정법( 正法 )을 수호한다는 의미까지 가짐으로써,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하나의 신앙형태로서 그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 역사를 정리하면

고구려의 호국불교

고구려 때 당(唐)나라 태종이 침입하자 고구려의 승려 3만명이 승군으로 출전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신라의 호국불교

1. 원광법사의 세속5계

우리나라의 호국불교는 원광법사의 '세속5계'로부터 비롯한다.

2. 황룡사9층목탑

주변의 9나라가 귀복할 것이라는 형태로 건립

3. 인왕백고좌도량

신라 왕실에서는 주로 인왕(仁王)에 의한 국토 수호를 목적으로 인왕백고좌도량을 열어 고승들을 불러들여 인왕경을 강설 하도록 하였다.

4. 문두루도량

주술적 성격을 띤 문두루도량을 열기도 하였는데, 신라와 당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 문두루도량을 열고 사천왕사를 지어 당나라 군사를 격퇴시켰다는 사실은 유명한 사례가 될 것이다.

고구려시대의 호국불교

고구려시대의 호국불교는 보다 주술적이고 의례적인 형태로 발전하여 재난을 극복하고 국가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많은 도량을 열었다. 당시의 도량으로는 금강명도량, 금강경도량, 관정도량, 재석도량, 약사도량, 문두루도량, 인왕도량 등이 대표적이다.

1.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을 판각하여 그 공덕으로 몽고의 침입을 격퇴하고자 하였던 것은 고려 호국불교의 단적인 사례

2. 승병-항마군(降魔軍)

고려시대에 승려(僧侶)로 편성 조직된 특수한 군대 '항마'란 불교에서 득도(得道)의 방해가 되는 악마를 항복시킨다는 뜻이다. 제 15대 숙종 때 여진(女眞)의 완안부(完顔部) 추장 유야수(烏雅束)의 침입을 비롯하여 여진족의 침범이 잦았다. 이에 도병마사(都兵馬使) 윤관(尹瓘)이 수차에 걸쳐 정벌하였으나, 여진의 우수한 기병(騎兵)의 기동성을 막을 수 없어 고려는 심한 타격을 받아왔다. 윤관은 이에 대처하기 위한 특수부대의 조직을 건의, 1104년 (숙종 9) 12월 별무반(別武班)을 조직하였다. 승려로만 조직된 항마군은 신기군(神騎軍), 연호군(烟戶軍)과 더불어 3군으로 편성된 별무반의 하나였다. 사원에서 노역이나 사원전(寺院田) 경작에 종사하는 수원승려(隨院僧侶)를 징발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 불교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호국불교는 형태를 달리하여 천재지변을 없애기 위한 주술적인 의례로 나타난다. 보살계도량을 비롯한 장경도량, 식재도량, 정도량, 용왕도량, 무차대회 같은 것은 조선시대 호국불교 도량의 대표적인 것이다.

1. 승병(僧兵)

조선시대 호국불교의 결정체로서 임진왜란 때에 휴정과 영규등 수많은 승려들로 조직된 조선시대의 비정규 군대, 승군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 수도승이 많아짐에 따라 유사시에는 이들도 출전하였다. 원래 불교는 살생을 금하나 한국의 불교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호국신앙과 결부,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발전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고려에 들어와서 외적의 침범이 빈번해지자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따라서 <금강명경(金剛明經)>, <인왕경(仁王經)>, <약사경(藥師經)>등을 존중하여 유사시에는 승려라도 군사로 출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승병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고구려 때 당(唐)나라 태종이 침입하자 고구려의 승려 3만 명이 승군으로 출전하였다는 내용이 <고려사> 최영전(崔瑩傳)에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내외사원(內外寺院)에는 수원승도(隨院僧徒)라 하여 군현의 주민처럼 사원에 부속되어 항상 노역(勞役)에 종사하면서 항산(恒産)을 누리고 사는 자가 많아서 유사시에는 이러한 인적 자원을 이용하여 승병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들 수원승도로 조직된 승병을 항마군(降魔軍)이라 하였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승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휴정(休靜)과 유정(惟政), 영규(靈圭), 처영(處英)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의 승병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의 지휘하에 왜군과의 싸움과 축성공사에 참여하였다. 결국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의 교리 중에 내표된 후국불교도 함께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국불교와 달리 새롭게 전개 발전함으로써, 단순히 좁은 의미의 국토를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부처님의 진리가 상존하는 대지'라는 의미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로 승화됨으로써 '호국(나라를 지킴)' 그 자체가 부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신앙으로 확대 발전한 것이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특징이라하고 하겠다.